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70

생각하는 정원, 한 농부가 빚은 풍경 (인공폭포, 분재, 돌하르방) 녹차밭을 지나 검은 돌담이 둘러싼 입구에 닿자, 키 큰 돌하르방 하나가 먼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생각하는 정원이라 적힌 현판과, 같은 이름을 한자로 새긴 글씨가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반세기 가까이 돌을 깨고 가시덤불을 걷어내며 일군 정원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은 터라, 문 앞에서부터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한경면 들판을 가르는 바람은 거칠었지만 정원 안쪽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발을 들이자마자 물소리가 먼저 마중을 나왔습니다. 단지는 낯선 풀냄새가 궁금한지 코를 박고 분주히 걸음을 옮겼고, 부모님은 입구에 놓인 분재 앞에서 벌써 한참을 머물러 계셨습니다. 어디서부터 둘러봐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을 만큼 정원은 넓었고, 그저 물소리가 이끄는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2026. 6. 21.
한림공원, 반려견과 걸은 한나절 (유리 온실, 재암민속마을, 새들의 정원) 제주 서쪽으로 차를 달리는 동안 창밖에 야자수가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제 한림공원에 거의 다 왔다는 신호였습니다. 한여름의 협재 바닷가 근처라 공기에는 옅은 짠 기운이 섞여 있었고,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키 큰 야자수와 하얗게 핀 문주란이 먼저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단지는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코를 킁킁대며 낯선 풀냄새를 살피느라 분주했습니다. 부모님과 저, 그리고 단지까지 온 가족이 함께 걷기 좋은 곳을 찾다가 고른 곳이라, 입구에 서기도 전부터 마음이 먼저 들떴습니다. 10만 평이 넘는 부지에 식물원과 용암동굴, 민속마을과 새들의 정원까지 한데 모여 있다 보니 어디부터 봐야 할지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서두를 이유는 없었습니다. 단지의 짧은 보폭에 걸음을 맞추며, 야자수 그늘을.. 2026. 6. 20.
돌마다 다른 표정, 금능석물원 (초가, 인어와 동자, 천 가지 표정) 여름 햇살이 돌 위로 곧장 내려앉던 한림이었습니다. 한림로를 따라 달리다 길가에 우뚝 선 표지석을 보고 차를 세웠습니다. 거친 현무암에 깊게 파인 '금능석물원'이라는 글자가 단단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똑같은 얼굴의 돌하르방만 줄지어 본 터라,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 깎았다는 돌 정원이 어떤 곳일지 궁금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키 큰 소나무 그늘 아래로 수백 개의 석상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관광지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오래된 마당에 들어선 듯한 고요함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단지도 유모차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낯선 돌들을 살폈습니다. 부모님은 그늘진 길을 앞서 천천히 걸으셨고, 저는 단지가 탄 유모차를 밀며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습니다. 매미 소리만 가득한 .. 2026. 6. 19.
송악산에서 한림 돌마을공원까지 (기념탑, 돌 정원, 화산석) 그날 제주의 하늘은 잿빛으로 낮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바다 빛은 흐렸지만 바람은 살갗에 부드럽게 닿았고, 저는 부모님과 함께 섬의 서쪽 끝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품에는 단지가 안겨 있었습니다. 어디로 떠나든 단지는 늘 제 곁에서 작은 숨을 고르며 함께 걸어 주던 반려견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우리는 송악산 바닷가에서 하루를 열었고, 오후에는 섬을 가로질러 한림의 작은 돌 정원까지 둘러보았습니다. 두 곳은 차로 한참을 달려야 하는 먼 거리였지만, 창밖으로 흘러가는 제주의 밭담과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사로워졌습니다. 멀게 이어 붙인 동선이 아쉽기보다, 오히려 하루가 더 넉넉하게 늘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디를 얼마나 보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그 길 위에 있었느냐가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 2026. 6. 18.
큰엉해안경승지, 단지와 걸은 절벽 산책 (해안 산책로, 한반도 숲) 그날 제주 남쪽 하늘은 종일 뿌옇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멀리 수평선이 안개에 묻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흐릿했고, 습한 바닷바람이 절벽 위 잔디를 쉴 새 없이 흔들었습니다. 반려견과 함께 부담 없이 걸을 만한 바닷길을 찾다가 닿은 곳이, 남원읍 바닷가에 자리한 큰엉해안경승지였습니다. 막상 도착해 보니 화창한 날의 푸른 바다 대신 잿빛으로 일렁이는 또 다른 제주가 저를 맞았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마자 짭짤한 바다 냄새가 밀려왔고, 단지는 그 냄새가 반가운지 코를 한껏 치켜들었습니다. 흐린 날씨가 아쉬울 법도 했지만, 오히려 인적이 드문 절벽 위를 우리 가족만의 속도로 걸을 수 있어 마음이 한결 느긋해졌습니다. 부모님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천천히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기셨고, 단지는 새로운 냄.. 2026. 6. 17.
제주 유리의 성, 맑은 소리가 머물던 오후 (유리의 화원, 현대유리조형관)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 들른 건 오전이었습니다. 점심을 앞둔 시장 골목은 사람들로 빼곡했고, 오메기떡을 사려는 줄과 갓 튀긴 대게 고로케 냄새가 통로를 따라 길게 흘렀습니다. 주문을 받던 가게 직원이 제주 사투리로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건네던 말이 정겨웠습니다. 골목 안쪽 떡집에서는 갓 쪄낸 오메기떡을 봉지에 담아 주셨는데, 쫀득한 떡 위에 팥콩고물이 소복하게 얹혀 있었습니다. 시장 입구의 공영주차장은 삼십 분에 오백 원으로 부담이 없어, 잠깐 들러 먹거리를 챙기기에 좋았습니다. 어머니는 떡집 앞에서 한참을 고르셨고, 저는 개모차에 탄 단지가 분주한 발걸음 사이에서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밀며 그 뒤를 따랐습니다. 오메기떡 몇 봉지와 한라봉을 챙긴 뒤, 우리는 차를 돌려 섬의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온통 유리.. 2026. 6. 16.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반려견과 국내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