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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동반 여행기

생각하는 정원, 한 농부가 빚은 풍경 (인공폭포, 분재, 돌하르방)

by 반려견과여행 2026. 6. 21.

녹차밭을 지나 검은 돌담이 둘러싼 입구에 닿자, 키 큰 돌하르방 하나가 먼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생각하는 정원이라 적힌 현판과, 같은 이름을 한자로 새긴 글씨가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반세기 가까이 돌을 깨고 가시덤불을 걷어내며 일군 정원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은 터라, 문 앞에서부터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한경면 들판을 가르는 바람은 거칠었지만 정원 안쪽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발을 들이자마자 물소리가 먼저 마중을 나왔습니다. 단지는 낯선 풀냄새가 궁금한지 코를 박고 분주히 걸음을 옮겼고, 부모님은 입구에 놓인 분재 앞에서 벌써 한참을 머물러 계셨습니다. 어디서부터 둘러봐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을 만큼 정원은 넓었고, 그저 물소리가 이끄는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기로 했습니다.

 

돌하르방이 반기는 곳

물줄기가 먼저 마중 나온, 인공폭포와 연못

정원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풍경은 여러 갈래로 쏟아지는 인공폭포였습니다. 사람이 쌓은 것이라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러워서, 검은 현무암 사이를 타고 내리는 물줄기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끼가 두껍게 앉은 바위와 둥글게 다듬어진 관목이 층층이 어우러져, 폭포 한 줄기마다 높이와 떨어지는 속도가 제각각 달랐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다 보니 물소리에도 결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사진을 남기기보다 그 앞에 가만히 서 있고 싶어 졌습니다.

인공폭포

 

폭포 아래로는 제법 너른 연못이 이어졌습니다. 물이 맑아 바닥의 돌까지 또렷이 비쳤는데, 붉고 흰 비단잉어들이 사람 그림자를 따라 느릿느릿 모여들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것부터 팔뚝만 한 것까지 크기가 다양해서, 잉어들이 한데 몰릴 때면 물빛이 알록달록 일렁였습니다. 연못 가운데 놓인 너럭바위에 올라서면 등 뒤로는 폭포가, 발밑으로는 잉어 떼가 함께 담겨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그 바위 위에 올라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한참을 서 계셨는데, 물소리에 묻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 보이셨습니다.

비단잉어들

 

물가에서는 단지도 평소보다 코끝이 바빴습니다. 잉어가 첨벙 대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물가로 다가서려다, 목줄을 살짝 당기자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 제 옆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정원은 목줄만 착용하면 반려견과 함께 걸을 수 있어, 물가를 따라 천천히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든 노견이라 빨리 걷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 느린 속도가 정원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서두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폭포 한쪽에 마련된 그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단지는 시원한 돌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한참 물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사람도 강아지도 이 물소리 앞에서는 한결 느긋해지는 듯했습니다.

 

한 농부가 평생을 쌓아 올린 분재와 돌탑

생각하는 정원의 진짜 주인공은 곳곳에 자리한 분재였습니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수령의 나무들이 작은 화분 안에서 저마다의 모양으로 굽이치고 있었는데, 가지 하나하나에 사람의 손길과 오랜 기다림이 켜켜이 배어 있는 듯했습니다. 수령이 백 년을 훌쩍 넘긴 소나무며 매화나무가 한 뼘 화분 안에서 제 모습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정원은 1968년부터 한 농부가 돌과 가시덤불뿐이던 땅을 손수 개간해 만든 곳으로,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그대로 풍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분재 한 점 앞에 설 때마다 그 세월의 무게가 느껴져, 부모님도 발걸음을 좀처럼 떼지 못하셨습니다.

정원 안쪽으로 들어서니 검은 화산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돌탑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습니다.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높이였는데,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 돌의 결이 그대로 살아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오래된 탑처럼 보였습니다. 그 곁에는 가운데가 둥글게 뚫린 화산석들을 잔디밭에 줄지어 놓은 자리도 있었는데, 돌 하나하나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어 천천히 걸으며 모양을 견주어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돌들 사이에 앉아 한참을 쉬어 가셨고, 단지도 잔디 냄새가 좋았는지 그 주위를 빙빙 맴돌았습니다.

화산석들

 

정원을 한 바퀴 도는 데에는 한 시간쯤이 걸렸습니다. 동선이 대체로 평탄하지만 군데군데 완만한 경사가 있어, 노부모님과 노견이 함께라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 편이 좋았습니다. 운영 시간과 입장 요금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므로, 방문 전 생각하는 정원 공식 누리집에서 미리 확인하면 동선을 짜기에 한결 수월합니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전망대를 겸한 본관이 있어, 위층까지 오르면 분재와 연못, 돌담이 어우러진 정원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너른 정원을 다 걷고 나서 그 위에서 내려다보니, 흩어져 보이던 풍경이 하나의 그림처럼 이어졌습니다.

 

돌하르방과 비석에 깃든 제주의 이야기

정원을 걷다 보면 제주의 상징인 돌하르방을 여러 번 만나게 됩니다. 큼직한 돌하르방 세 기가 나란히 선 자리에서는 누구라도 그 앞에 서서 사진 한 장을 남기게 되는데, 둥근 눈과 두툼한 손이 어딘가 사람을 닮아 정겨웠습니다. 벤치 곁에 앉은 또 다른 석상은 마치 오래 그 자리를 지켜 온 길벗처럼 느껴져, 잠시 나란히 앉아 다리를 쉬어 가기에 좋았습니다. 턱을 괴고 그 석상과 같은 자세로 앉아 보니, 어쩐지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습니다.

돌하르방들을 많이 볼수 있다

 

정원 한편에는 한자가 빼곡히 새겨진 커다란 비석도 있었습니다. 이 정원은 황무지를 홀로 일군 농부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여러 나라의 손님이 다녀간 곳으로, 특히 중국의 여러 지도자가 잇따라 찾은 뒤로 세계에 더 널리 알려졌다고 합니다. 한 농부의 개척 정신을 배우라는 말이 오갔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비석 앞에 서니, 글귀의 뜻을 다 헤아리지는 못했어도 그 우직한 집념이 바다 건너까지 가닿았다는 사실만으로 한참을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정원 곳곳에는 둥근 몽돌과 현무암을 정성껏 쌓아 만든 담과 돌의자가 놓여 있어, 걷다가 지치면 어디든 앉아 쉬어 갈 수 있었습니다. 몽돌로 빚은 벽 앞 돌의자에 앉으니 등 뒤의 돌 하나하나가 다른 빛깔로 어우러져,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크고 작은 돌이 빛깔도 결도 제각각이라, 같은 벽인데도 보는 자리에 따라 전혀 다른 무늬가 떠올랐습니다. 너른 잔디밭이 내려다보이는 나무 그늘 아래 돌담에 기대앉으면 바람에 풀이 눕는 소리까지 들려와, 한참을 일어나기 싫었습니다. 입구 가까운 귤나무 아래에서는 단지가 가족들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노랗게 익은 귤이 매달린 나무 아래, 돌담을 등지고 둘러앉아 단지의 목줄을 풀어 잠시 숨을 고르던 그 시간이 이날 정원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주소는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 675이며, 너른 주차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차로 찾아가기에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설록 녹차밭에서도 멀지 않아, 함께 묶어 둘러보기에도 좋은 자리였습니다.

 

 

정원을 다 돌고 나오는 길에,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 가꾼 풍경 안을 우리가 그저 한 시간 남짓 걸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빠르게 둘러보고 사진만 남기는 여행과는 결이 사뭇 다른 곳이어서, 걸음이 느린 노부모님과 단지에게도 오히려 잘 맞았습니다. 물소리를 따라 걷고, 분재 앞에 멈춰 서고, 돌의자에 앉아 쉬어 가는 동안 시간이 천천히 흘렀습니다. 분재 한 점, 돌탑 하나에도 켜켜이 쌓인 시간이 담겨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정원이 한층 다르게 보이니, 제주 서쪽을 여행하신다면 서두르지 말고 반나절쯤 넉넉히 비워 천천히 걸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정원을 나설 무렵엔 어느새 우리 걸음도 입구에 들어설 때보다 한결 느려져 있었습니다. 단지와 함께 걸었던 이 고요한 정원의 물소리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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