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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동반 여행기

돌마다 다른 표정, 금능석물원 (초가, 인어와 동자, 천 가지 표정)

by 반려견과여행 2026. 6. 19.

여름 햇살이 돌 위로 곧장 내려앉던 한림이었습니다. 한림로를 따라 달리다 길가에 우뚝 선 표지석을 보고 차를 세웠습니다. 거친 현무암에 깊게 파인 '금능석물원'이라는 글자가 단단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똑같은 얼굴의 돌하르방만 줄지어 본 터라,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 깎았다는 돌 정원이 어떤 곳일지 궁금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키 큰 소나무 그늘 아래로 수백 개의 석상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관광지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오래된 마당에 들어선 듯한 고요함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단지도 유모차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낯선 돌들을 살폈습니다. 부모님은 그늘진 길을 앞서 천천히 걸으셨고, 저는 단지가 탄 유모차를 밀며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습니다. 매미 소리만 가득한 한낮의 정원은 사람도 드물어, 돌들과 우리만 남은 듯 조용했습니다.

 

금능석물원 표지석

돌에 새긴 살림살이, 초가 앞에 모인 사람들

입구를 지나자 가장 먼저 키 큰 석상 하나가 길손을 맞았습니다. 두 손을 모은 자애로운 얼굴이 그늘 속에서 가만히 우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길을 따라 안으로 드니 초가집 한 채가 정원 안쪽에 낮게 앉아 있었습니다. 새끼줄로 촘촘히 엮은 지붕과 현무암을 쌓아 올린 돌담이 제주 옛집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 앞마당에는 돌로 빚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망건을 손질하는 노인, 그물을 당기는 어부, 등에 짐을 진 아낙이 저마다 분주한 손짓으로 굳어 있어, 멈춰 선 조각인데도 마을의 하루가 그대로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초가집앞 석조각

 

한쪽에는 물허벅을 진 어머니상이 서 있고, 그 발치의 항아리에는 작은 아이들이 매달려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단단한 표정과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몸짓이 한자리에 놓이니, 고된 살림 속에서도 식구를 보듬던 옛 제주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저도 그 옆에 서서 항아리를 매만져 보았습니다. 손끝에 닿는 돌의 거친 결이 한낮의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습니다.

석물원 어머니상

 

단지는 유모차에서 내려 잔디를 밟아 보더니, 자기보다 키가 큰 돌사람들 사이를 코를 킁킁대며 천천히 돌았습니다. 돌 틈으로 햇빛이 들고 바람이 지날 때마다 그늘이 옮겨 다녔고, 단지는 시원한 그늘 자리를 골라 잠시 엎드려 쉬었습니다. 초가 옆으로는 거친 돌을 둥글게 쌓아 올린 방사탑이 서 있었습니다. 마을로 드는 나쁜 기운을 막는다는 제주의 돌탑인데, 그 앞에 작은 석상이 익살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어 한참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정원 한편에는 정녀굴과 조롱굴이라는 작은 동굴도 있어, 돌 정원 한가운데에서 서늘한 굴 바람을 만나는 점이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부모님은 초가 툇마루 쪽 그늘에서 사진을 찍으셨고, 저는 그사이 단지에게 물을 챙겨 먹였습니다. 노면이 고른 흙길과 잔디라 유모차를 밀기에 큰 무리가 없었고, 돌담 사이사이 그늘이 많아 한여름에도 쉬어 가며 걷기 좋았습니다.

방아탑

물소리 흐르는 자리, 인어와 동자가 머무는 곳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검은 현무암 절벽 위에서 가는 물줄기가 흘러내려 작은 연못으로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그 바위 위에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인어상이 비스듬히 누워 있고, 맞은편 바위틈에는 물허벅을 인 여인이 물줄기를 맞으며 서 있었습니다. 이끼 낀 검은 돌과 맑은 물, 그리고 흰 석상이 어우러지니 더운 날인데도 그 앞만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저는 인어상이 누운 바위 위에 잠시 걸터앉아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돌을 타고 내려온 물이 발밑에서 잔잔하게 고이는 동안, 단지는 연못가의 물 냄새가 신기한지 가까이 다가가 코를 들이밀었습니다. 혹시 미끄러질까 싶어 줄을 짧게 잡고 곁을 지켰습니다. 검은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일 때마다, 단지는 귀를 쫑긋 세우며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습니다. 한낮의 더위가 무색하게 그 자리에 머물자 땀이 절로 식었고, 한참을 떠나기가 아쉬웠습니다.

인어상

 

연못을 지나 조금 더 걷자 큰 독을 둘러싸고 아이들이 매달려 오르는 동자상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둥근 항아리에 올망졸망 붙은 아이들의 표정이 어찌나 천진한지, 돌인데도 금방이라도 까르르 웃음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동자상

 

그 곁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큰 돌기둥이 서 있었는데, 깊게 파인 눈과 긴 코가 멀리 이스터섬의 모아이를 닮아 있었습니다. 입가에 누군가 올려 둔 작은 돌들이 소복하게 쌓여, 오랜 세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저도 발치의 작은 돌 하나를 주워 가만히 얹어 보았습니다. 무엇을 빌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순간만은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습니다. 작은 돌 하나에 소원을 담아 두고 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단지는 그 큰 돌기둥 아래에서 한참 위를 올려다보더니, 제 다리 뒤로 슬쩍 숨었습니다. 아마 제 눈에도 그 돌사람이 무척 커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웃었습니다.

 

한 사람의 손끝에서, 천 가지 표정으로 남은 돌

정원 가장 안쪽에는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큰 석상이 있었습니다. 둥글넓적한 얼굴의 어른을 가운데 두고 아홉 명의 아이가 어깨와 무릎, 등에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었습니다. 안내판에는 아홉 아이가 노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웃는 듯 찡그린 듯한 어른의 얼굴과 천방지축 매달린 아이들이 한 덩어리로 어우러져, 보고 있으면 절로 입가가 풀어졌습니다.

구동자상

 

그 너머 잔디밭에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을 비롯해 제주의 신화와 살림을 담은 돌들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이 수많은 석상이 모두 장공익 명장 한 분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사십여 년 동안 제주의 화산석을 깎아 신화와 일상을 새겨 넣은 분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얼굴 하나 없이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지닌 돌들을 보니, 한 사람이 평생을 바친 시간의 무게가 그대로 와닿았습니다. 저는 구동자상 옆 너럭바위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고, 단지도 유모차에 올라 그늘에서 다리를 쉬었습니다. 부모님은 멀찍이 떨어진 돌하르방 앞에서 사진을 남기셨습니다.

 

금능석물원은 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176에 자리합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로, 마감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를 수 있어 방문 전 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에서 확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입장료와 주차 요금도 자료마다 안내가 달라 같은 페이지에서 미리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는 데 사십 분 남짓 걸리고, 매점과 카페가 있어 더운 날 잠시 쉬어 가기에도 좋습니다. 야외 돌 정원이라 반려견과 함께 둘러볼 수 있었고, 흙길과 잔디가 대부분이라 유모차를 끌고도 무리 없이 다녔습니다. 다만 일부 동굴 입구와 우측 길에는 계단이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라면 화장실 방면 좌측 길로 도는 편이 한결 수월합니다.

석물원 입구

 

 

돌 하나하나에 제주 사람들의 살림과 신화가 담겨 있어, 빠르게 지나치기보다 천천히 표정을 살피며 걷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 깎아 낸 돌들이 뿜어내는 정성과 고요함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늘이 넉넉하고 길이 평탄해 반려견과 부모님 모두 편하게 걸을 수 있었던 점도 좋았습니다. 협재해변이나 한림공원과 가까워 함께 묶어 둘러보기에도 어렵지 않으니, 제주에서 조금 색다른 산책길을 찾는 분이라면 한 번쯤 들러 보시길 권합니다. 걸음마다 새로운 표정의 돌을 만나는 재미가 있어, 산책 자체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단지와 함께 그 사이를 거닐던 여름날의 고요한 오후가, 지금도 마음 한편에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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