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 들른 건 오전이었습니다. 점심을 앞둔 시장 골목은 사람들로 빼곡했고, 오메기떡을 사려는 줄과 갓 튀긴 대게 고로케 냄새가 통로를 따라 길게 흘렀습니다. 주문을 받던 가게 직원이 제주 사투리로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건네던 말이 정겨웠습니다. 골목 안쪽 떡집에서는 갓 쪄낸 오메기떡을 봉지에 담아 주셨는데, 쫀득한 떡 위에 팥콩고물이 소복하게 얹혀 있었습니다. 시장 입구의 공영주차장은 삼십 분에 오백 원으로 부담이 없어, 잠깐 들러 먹거리를 챙기기에 좋았습니다. 어머니는 떡집 앞에서 한참을 고르셨고, 저는 개모차에 탄 단지가 분주한 발걸음 사이에서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밀며 그 뒤를 따랐습니다. 오메기떡 몇 봉지와 한라봉을 챙긴 뒤, 우리는 차를 돌려 섬의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온통 유리로 채워졌다는 곳, 제주 유리의 성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흐린 하늘 아래 한경면으로 접어드는 동안 차창 밖 풍경은 점점 한적해졌습니다.

거울빛이 일렁이던, 유리의 화원
유리의 성 정문을 지나 야외 정원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거울 조각으로 빚은 돌하르방 셋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잠깐 비칠 때마다 수천 개의 거울 조각이 한꺼번에 반짝여, 익숙한 돌하르방이 전혀 다른 얼굴로 보였습니다. 단지를 개모차에서 잠시 내려 그 앞에 함께 섰습니다. 어머니가 단지 목줄을 가만히 잡아 주시는 사이, 저는 사진을 한 장 남겼습니다. 돌하르방 발치에는 작은 유리 조각들이 색색으로 박혀 있어, 가까이서 보면 또 다른 작은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색색의 유리 줄기가 나무처럼 솟아오른 조형물이 이어졌습니다. 빨강과 파랑, 연두가 뒤엉킨 유리 덩굴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가느다랗게 떨렸고, 그때마다 어딘가에서 맑고 투명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작은 유리 조각들이 실제로 부딪힌 소리였는지, 아니면 그 투명한 빛이 만들어 낸 착각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정원에 서 있는 내내 마음이 한결 맑아지더라고요. 정원 곳곳에는 유리로 만든 꽃과 풍선, 다이아몬드 모양의 조형물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놓여 있어,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 나타났습니다. 잔디밭 한쪽에는 유리로 만든 기린이 목을 길게 빼고 서 있어, 단지가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거울 호수가 자리해 있었습니다. 버려진 소주병을 녹여 만들었다는 유리 물고기들이 수면 아래에서 빛을 받아 반짝였고, 조각 하나하나가 물결처럼 일렁여 한참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호수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아 유리 물고기를 한 마리씩 눈으로 세어 보셨습니다. 길을 따라 늘어선 유리 돌담과 작은 미로 사이로 단지가 코를 킁킁대며 앞장섰고, 어머니와 저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 걸었습니다. 비가 막 그친 뒤라 공기가 촉촉했고, 젖은 잔디 위로 유리들이 더 선명하게 빛났습니다.
단지는 개모차에 탔다가 내려 걷기를 번갈아 했습니다. 잔디밭 사잇길이 평탄해 개모차로 다니기에 무리가 없었고,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는 데에도 큰 제재는 없었습니다. 다만 사방이 유리 작품이라 단지가 가까이 다가가지 않도록 목줄을 짧게 잡고 걸었습니다. 주차장은 부지 안에 넓게 마련돼 있어, 차를 대고 정원까지 걷는 길도 멀지 않았습니다.
동화 속을 걷듯, 현대유리조형관
야외를 한 바퀴 돌고 실내 전시관으로 들어섰습니다. 유리 돔으로 덮인 회랑에는 고드름처럼 길고 투명한 유리가 천장 가득 매달려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아래에서 한참을 올려다보시다가, 손을 뻗어 가장 낮게 드리운 유리 끝을 살며시 만져 보셨습니다. 흐린 날인데도 회랑 안은 은은하게 빛났고, 발밑 나무 데크를 디딜 때마다 유리들이 조용히 흔들렸습니다. 회랑 너머로는 야외 정원이 그대로 내다보여, 안과 밖의 경계가 유리 한 겹으로만 나뉜 듯했습니다.

전시관 안에는 유리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작품들이 가득했습니다. 알록달록한 무늬가 박힌 유리 부츠와 핸드백은 진짜 가죽처럼 보였고, 천장까지 솟은 잭과 콩나무 모양의 유리 줄기는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기분을 들게 했습니다. 진열장마다 빛을 머금은 유리잔과 그릇이 줄지어 놓여 있어,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반짝였습니다. 한쪽 벽에는 수천 개의 작은 유리로 표현한 별자리가 펼쳐져 있어,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 둔 듯했습니다. 작품마다 빛이 통과하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져, 한 발짝 옮길 때마다 같은 작품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단지는 개모차 안에서 고개를 빼고 그 빛을 따라 두리번거렸습니다.

전시관 한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유리구와 유리 다이아몬드가 자리해, 그 규모에 절로 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와 체코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같은 유리라도 나라마다 색과 결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전시관을 나오면 유리로 지은 카페가 있어, 잠시 앉아 다리를 쉬며 정원을 바라보기 좋았습니다. 직접 유리를 불어 만드는 체험장도 따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단지를 데리고 있어 이번에는 눈으로만 구경하고 지나쳤습니다. 다음에 오면 작은 유리구슬 하나쯤은 손수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는 데에는 두 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운영 시간과 입장 요금은 시즌마다 조금씩 달라집니다. 보통 오전 아홉 시에 문을 열고 연중무휴로 운영하며, 여름철에는 야경을 위한 야간 개장도 진행합니다. 입장료는 성인 만 천 원 안팎이고,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하면 조금 더 저렴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정확한 시간과 요금, 야간 개장 일정은 제주 유리의 성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소는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 462입니다.
돌아 나오는 길, 차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정원을 한 번 더 돌아보았습니다.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유리들은 저마다의 빛을 머금고 있었고, 그 맑은 기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아침 시장의 북적임에서 시작해 투명한 유리의 정적으로 마무리된 하루였습니다. 손에는 오메기떡 봉지가, 곁에는 종일 개모차와 잔디밭을 오가며 함께한 단지가 있었습니다. 시장에서 산 떡을 차 안에서 나눠 먹으며 돌아오던 길까지, 그날 하루는 빛과 정으로 골고루 채워져 있었습니다. 유리라는 단단하고 차가운 재료가 이토록 따뜻한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돌아오는 내내 마음에 맴돌았습니다. 그날의 맑은 빛을 떠올리면, 곁에서 종종거리던 단지의 발걸음까지 함께 떠오릅니다. 제주의 서쪽 끝까지 발걸음이 닿는 날이 온다면, 이 맑은 유리의 성에서 잠시 마음을 헹구고 가셔도 좋겠습니다. 맑은 것을 보고 싶은 날이라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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