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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다시 찾는 여행지 (보문단지, 왕릉, 봉길해수욕장)

by 반려견과여행 2026. 4. 22.

여름이 되면 저는 거의 매년 경주로 향합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반려견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아, 다음 해 여름이 오기도 전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 같은 곳이라 반려견과 산책만 해도 시간이 훌쩍 흐르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보문관광단지에서 시작해 봉길해수욕장의 바닷가로 이어지는 코스를 가장 좋아합니다. 오늘은 제 반려견과 함께 다녀온 경주 여행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볼까 합니다.

경주에 들어섰다는 실감, 보문단지와 경주타워

경주로 들어설 때 멀리서부터 보이는 건축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보문관광단지 안쪽에 자리한 경주타워입니다. 저는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보문단지 쪽으로 진입할 때 이 탑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 경주에 왔구나" 하고 실감이 나곤 합니다. 경주타워는 옛 신라의 정취와 현대 건축의 감각이 묘하게 어우러진 건축물인데, 황룡사 9층 목탑의 실루엣을 건물 전면에 음각으로 파내어 표현한 구조가 특징입니다. 쉽게 말하면 탑 모양을 벽에 찍어낸 것이 아니라, 건물의 몸통을 탑 형태로 비워내어 그 빈 공간이 하늘을 배경으로 목탑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처음 이 건물을 직접 봤을 때는 현대 건축이 전통을 이렇게 품을 수도 있구나 싶어 한참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경주타워 전망대는 반려견 동반 입장이 어려운 공간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가족 중 한 명이 반려견과 함께 보문단지 산책로를 돌기로 하고, 저 혼자 타워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타워 내부 전시실에는 신라의 유물과 토기들이 꽤 알차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특히 토기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형태를 꾸미려고 애쓴 느낌보다는 당시 사람들이 살면서 필요했던 것들을 솔직하게 빚어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그중에는 성적 표현이 드러난 이른바 토우 장식 토기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살짝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가도 이내 고대 사람들이 삶과 욕망을 감추지 않고 표현해 낸 그 대범함에 오히려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반려견이 있는 쪽으로 내려가 보니, 단지 곳곳을 코를 킁킁대며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다음에도 꼭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문단지 안에는 식당과 카페가 많지만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곳을 당장 찾기가 쉽지 않아, 저와 가족들은 경주의 명물인 황남빵을 포장해 와서 간단히 요기를 때웠습니다.

 

경주 타워 외관

왕릉이 보이지 않는 왕릉, 문무대왕릉 앞에서 느낀 허탈함

보문단지에서 시간을 보낸 뒤 저희의 진짜 목적지인 바다로 향했습니다. 이번에 고른 곳은 문무대왕릉이 자리한 봉길해수욕장입니다. 대왕릉이라고 하면 보통은 봉분이 솟아 있거나 어떤 위엄 있는 형태의 무덤을 떠올리기 마련이라, 저 역시 바다 앞에 도착하면 뭔가 장엄한 장면이 펼쳐질 거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변에 도착해서 바다를 바라보니 왕릉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바위섬 하나가 떠 있을 뿐이었습니다. "왕릉은 어디 있지?" 하는 허탈함이 먼저 밀려왔습니다.

알고 보니 문무대왕릉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육지 위의 왕릉이 아니라, 바다 한가운데 바위섬 안에 조성된 이른바 해중릉입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겼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유해를 바다에 장사 지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이 바위섬은 대왕암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실제로 유골함이 그 안에 안치되어 있느냐를 두고는 학계에서도 오랜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학자가 아니니 어느 쪽이 맞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바위 안쪽에 유골함이 있을 거라고 믿는 편이 이 풍경을 바라보는 데 더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왕릉이라는 점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오히려 상상의 여백이 많은 유적이라는 점에서 묘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여행을 다닐 때 저는 사전 정보를 많이 찾아보지 않고 떠나는 편입니다. 새로운 것을 처음 보는 순간의 감각을 그대로 누리고 싶어서인데, 이번처럼 기대했던 장면과 실제가 크게 다를 때는 제 습관이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채로 와서 직접 마주하고 나니, 문무대왕릉이라는 장소가 가진 독특함이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문무 대왕릉이 있는 바다 풍경

반려견과 몽돌 위에서 보낸 시간, 봉길해수욕장의 하루

봉길해수욕장은 모래사장 구간과 몽돌로 이루어진 구간이 함께 있는 해변입니다. 몽돌이란 파도에 오랜 세월 깎여 동글동글해진 자갈을 뜻하는데, 밟으면 서걱서걱 소리가 나고 발바닥에는 따끈한 온기가 전해져 오는 특별한 해변 바닥입니다. 저는 반려견과 함께 머물 자리로 사람이 많은 모래사장 대신 몽돌이 있는 쪽을 택했습니다. 모래사장은 개방감이 좋지만 사람이 많을 때는 반려견에게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고, 다른 이용객에 대한 배려도 훨씬 더 신경 써야 합니다. 반면 몽돌 구간은 바닥이 불편한 대신 사람들이 덜 몰리기 때문에, 반려견과 천천히 시간을 보내기에는 오히려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몽돌이 낯선 강아지는 걷는 것 자체를 힘들어할 수 있으니, 이 부분은 보호자가 잘 살펴야 합니다.

실제로 제 반려견도 몽돌 위를 걷다가 갑자기 한쪽 앞발을 들고 끙끙대며 저를 쳐다본 적이 있습니다. 발을 봐 달라고 떼를 쓰기에 살펴봤더니 발가락 사이에 작은 돌 하나가 끼어 있어 불편했던 것이었습니다.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지만 동시에 신발을 챙겨 온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리 준비해 간 반려견용 신발을 신겨주자, 언제 불편해했냐는 듯이 해변을 신나게 뛰어다녔습니다. 반려견과 함께 해변을 즐길 계획이라면 몽돌 구간이나 자갈이 있는 해변에서는 반려견 전용 신발을 꼭 챙기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발바닥 화상이나 이물감으로부터 지켜주는 기본 장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낮에는 모래찜질 대신 돌찜질을 해보기도 했는데, 반려견이 따끈한 몽돌 위에 배를 깔고 눈을 지그시 감는 모습이 어찌나 평화로워 보이던지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장면은 제 머릿속에 오래 남을 여행의 한 컷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제 반려견 이름은 단지인데, 단지가 눈을 감고 돌의 온기를 느끼는 모습은 정말 사진보다 눈에 더 깊이 박히는 순간이었습니다.

돌찜질 하는 반려견 단지
눈을 감고 돌찜질을 즐기는 우리집 강아지 단지의 귀여운 모습

 

물론 이런 해변에서도 반려견 동반 시 지켜야 할 기본 수칙은 분명히 있습니다. 리드줄은 항상 착용하고, 배변 봉투는 넉넉히 챙기며, 사람이 있는 쪽으로는 최대한 접근하지 않도록 자리를 잡는 것이 기본입니다. 봉길해수욕장은 공식적으로 반려동물 동반이 전면 금지된 해변은 아니지만, 해수욕 성수기에는 지자체별로 제한 구역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경주시청이나 관할 읍면 사무소를 통해 확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주차는 봉길해수욕장 인근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되는데, 성수기에는 이른 시간에 자리가 빠르게 차는 편이라 가급적 오전에 도착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여행을 돌아보면 이 정도로 행복해도 되나 싶을 만큼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즐거웠는데, 단지는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낯선 바위섬 너머의 바다 냄새를 맡고, 몽돌의 따뜻함에 배를 깔고, 익숙한 가족과 하루 종일 붙어 있었던 그 시간은 아마 단지에게도 나쁘지 않은 하루였을 겁니다. 여름이 다시 돌아오면 저는 또 이 해변을 찾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가까운 감포 쪽 작은 포구까지 동선을 넓혀보고 싶다는 계획도 조용히 세우고 있습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경주 바다 여행을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왕릉이 보이지 않는 문무대왕릉 앞에서 한 번쯤 허탈해지고, 그다음에 몽돌 해변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어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두 감정 사이 어딘가에 경주 바다만의 깊이가 있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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