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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동반 여행기

바람 센 날 건넌 다리 끝 귀여운 섬 (새연교, 새섬)

by 반려견과여행 2026. 6. 8.

제주에서 보낸 어느 늦은 오후였습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말 듯했었어요. 일정이 정해진 여행이라 흐린 날씨를 핑계로 숙소에만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향한 곳이 서귀포항 끝자락에 자리한 새연교였습니다. 서귀포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아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섯 시쯤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주차 요금을 따로 받지 않아 시작부터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차에서 단지의 개모차를 내려 끌고 다리 입구로 걸어가던 그 순간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흐린 날의 바다는 맑은 날과는 또 다른 빛을 띠더라고요. 회색빛 하늘 아래 천천히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오늘은 어떤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가만히 기대해 보았습니다. 비가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여행지에서는 날씨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그저 주어진 하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돛을 닮은 다리 새연교, 바람을 가르며 건너다

새연교는 멀리서부터 한눈에 들어오는 다리였습니다. 다리 끝에 우뚝 솟은 새하얀 기둥이 마치 바람을 받아 부풀어 오른 돛처럼 보였거든요. 알고 보니 이 주탑은 제주의 전통 고깃배인 테우를 형상화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높이가 사십오 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가까이 다가갈수록 고개가 점점 뒤로 젖혀질 만큼 시원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주탑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케이블이 다리를 팽팽하게 붙들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서귀포항과 새섬을 잇는 보도교라 차는 들어갈 수 없고, 오롯이 두 발로만 건널 수 있는 다리였습니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놓인 가장 긴 보행 다리라는 설명도 어딘가에 적혀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다리 위에서는 누구도 서두르는 사람 없이 저마다의 속도로 바다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다리에 발을 올리자마자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바람이었습니다. 항구를 빠져나온 바람이 탁 트인 다리 위로 거침없이 불어오더라고요. 머리카락이 마구 흩날리고 옷자락이 펄럭일 만큼 세찬 바람이었습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단지였습니다. 작은 몸집의 단지가 이 바람에 휘청이거나 놀라기라도 할까 싶어, 걷던 걸음을 멈추고 서둘러 개모차에 태웠습니다. 개모차 안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바람 냄새를 맡는 단지를 보니 어찌나 든든하던지요. 단지를 안전하게 태우고 나서야 비로소 다리 위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발밑의 나무 바닥은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기분 좋은 단단함이 느껴졌습니다.

다리 한가운데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서귀포항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졌습니다.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과 그 너머로 이어지는 바다, 흐린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까지 한눈에 담기더라고요. 맑은 날이었다면 더 또렷한 빛을 보았겠지만, 흐린 날 특유의 차분한 색감도 그 나름의 운치가 있었습니다. 다리 끝에 거의 다다라 주탑 바로 아래에 서니, 거대한 돛 아래에 들어선 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들으니 이 다리는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이 켜져 야경 명소로도 손꼽힌다고 하는데, 낮의 담백한 모습도 충분히 좋았습니다. 다만 바람이 워낙 강해 난간을 한 번씩 짚으며 천천히 건너야 했습니다. 반려견과 함께라면 이런 날에는 더욱 조심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새연교

한 바퀴면 충분한 새섬, 귀엽다는 말이 어울리던 섬

다리를 다 건너자 곧장 새섬으로 들어섰습니다. 새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지만, 잘 다듬어진 산책로 덕분에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길은 일 킬로미터 남짓이라, 천천히 걸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였거든요. 목재 데크길과 자갈길,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 번갈아 이어져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새연교가 올레길 6코스에 이어져 있어서인지, 가볍게 섬을 한 바퀴 도는 사람들도 제법 보였습니다. 산책로 곳곳에 놓인 안내판에는 이 섬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생물권보전지역에 속한다는 설명이 한글과 영문으로 나란히 적혀 있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칠 뻔한 작은 섬이 그렇게 귀한 자연이라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새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예쁘다보다 귀엽다는 말이었습니다. 거창하게 압도하는 절경이라기보다, 아담한 나무와 야트막한 풍경이 옹기종기 모여 정겨운 느낌을 주는 섬이었거든요. 흐린 날이라 색이 한 톤 가라앉아 있었는데도, 오히려 그 차분함이 섬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습니다. 둥글게 다듬어진 나무 한 그루가 데크 위로 넓게 가지를 드리운 자리가 있었는데, 그 아래 벤치에 잠시 앉아 쉬어 갔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다리 위에서와 달리 한결 부드러워, 그제야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단지도 개모차 안에서 편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잠깐의 쉼이 흐린 오후를 더 느긋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새섬 벤치에서

 

산책로를 걷는 내내 단지와 함께였습니다. 개모차를 끌고도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을 만큼 길이 평탄해서, 반려견과 동반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새연교 위의 거센 바람과 달리 섬 안쪽은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 주어, 단지도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산책을 마칠 무렵에는 서귀포 앞바다에 떠 있는 문섬과 범섬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의 손이 적게 닿은 무인도라 그런지, 빽빽하게 우거진 난대림과 깨끗한 자연을 가까이에서 누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남았습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다시 다리 앞에 섰을 때는, 그리 큰 섬이 아닌데도 알차게 걸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새섬은 출입 시간이 정해져 있어, 개방 시간이나 자세한 안내는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새연교 소개 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하면 좋습니다.

 

 

흐린 날 찾은 새연교와 새섬은,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기억에 남는 곳이었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건넌 다리와 그 끝에서 만난 작고 귀여운 섬, 그리고 그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단지까지 말입니다. 거창한 볼거리를 쫒기보다 천천히 걸으며 바다와 바람을 느끼고 싶은 날이라면 더없이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바람이 강한 날에는 새연교 위에서 반려견이 놀라거나 휘청이지 않도록 개모차에 태우거나 잘 살펴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새섬 안쪽은 바람도 잔잔하고 길도 평탄해, 반려견과 함께 가볍게 산책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다음에 제주를 다시 찾는다면, 그때는 맑은 날 노을이 질 무렵에 한 번 더 이 다리를 건너보고 싶습니다. 사진 속 흐린 하늘과 단지의 모습을 다시 마주하고 있자니, 그날 다리 위에서 듣던 바람 소리까지 함께 떠오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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