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흙길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자 더운 바람이 훅 들어왔습니다. 8월 초, 한낮의 제주는 그늘 밖에 서 있기가 겁날 만큼 뜨거웠습니다. 그런데도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빼곡했고, 사람들 손에 들린 목줄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 말고도 강아지를 데리고 온 가족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단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코부터 들이밀며 낯선 냄새를 살폈습니다. 처음 온 곳에서는 늘 이렇게 한참을 망설이다, 괜찮다 싶으면 그제야 발을 떼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양산을 펴 들고 단지의 목줄을 짧게 고쳐 쥐었습니다. 그늘이라곤 보이지 않는 그 언덕길을, 이제 함께 걸어볼 참이었습니다. 더울 걸 뻔히 알면서도 굳이 한낮에 나선 건, 그냥 그날따라 바다가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단지를 데리고 이렇게 멀리까지 온 김에, 후회 없이 걷자 싶었거든요.
햇살을 가릴 데 없는 길, 그래도 걷고 싶던 언덕길
섭지코지는 주차장에서 언덕 끝까지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길 자체는 완만하고 잘 닦여 있어 어렵지 않은데, 정작 힘든 건 그늘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나무 한 그루 변변히 없는 길이라, 한여름이라면 양산이나 모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저희도 양산을 챙겨 갔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없었습니다. 물도 넉넉히 가져가시는 게 좋습니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까만 털의 단지 같은 아이는 달궈진 바닥 열기에 훨씬 빨리 지치거든요. 그날도 저는 단지가 헉헉대지 않는지 자꾸만 보게 되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는 있습니다. 다만 제주공항에서 111번을 타고 수산초등학교에서 내려 721-3번으로 갈아탄 뒤, 섭지코지 정류장에서 다시 25분쯤 걸어야 합니다. 강아지와 함께라면 솔직히 권하고 싶지 않은 동선입니다. 저희는 차로 움직였는데,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실 거라면 자차가 마음이 훨씬 편합니다. 입구 쪽에 매점이 있어 간단한 군것질이나 음료는 해결되지만, 운영 여부는 그날그날 다를 수 있으니 너무 믿진 마세요.

길을 걷다 보면 단지처럼 들뜬 강아지들을 자주 만납니다. 이렇게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으니 풀어주면 신나게 뛸 텐데, 하는 마음이 절로 들지요. 그런데 여기서만큼은 절대 목줄을 풀어선 안 됩니다. 길 옆 초원이 말 방목 구역이라 진짜 말들이 풀을 뜯고 있거든요. 강아지가 흥분해서 뛰어들거나 짖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사람 다니는 산책로 안에서만, 조심조심 다녀야 합니다. 단지도 그날은 눈치를 챘는지 제 발치에 딱 붙어 얌전히 걸었습니다.
그렇게 언덕을 오르는데, 위쪽에서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다가왔습니다. 분홍 옷을 입은 작은 친구였는데, 글쎄 단지가 먼저 코를 내밀더라고요. 낯가림 심한 단지가 먼저 인사를 거는 일은 정말 드물었습니다. 둘이 코를 맞대고 서로 냄새를 맡는 그 잠깐을, 저는 괜히 뭉클해서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이렇게 길에서 만난 견주들과 눈인사를 나누게 되는데, 그 소소한 정이 또 여행의 맛입니다.

방문 전 확인 권장 — 주소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로 95입니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전용 주차장은 승용차 1,000원, 승합차·버스 2,000원(1일 기준)입니다. 반려견은 목줄 착용이 필수이며, 방목된 말이 있는 구역에서는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운영시간과 매점·편의시설 운영 여부는 계절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 방문 전 확인을 권합니다. 산책 위주의 야외 코스라 천천히 둘러보면 한 시간 안팎 걸립니다.
바다를 다 내준 등대 전망대에서
언덕 끝에는 하얀 등대 전망대가 있습니다. 붉은 화산토 언덕 위에 단정하게 올라앉은 등대인데, 그 앞 데크에 서면 사방이 탁 트입니다. 한쪽엔 성산일출봉이 우뚝하고, 발아래로는 바위섬과 검은 자갈 해안이 펼쳐집니다. 올라오느라 흘린 땀이 바닷바람에 단숨에 식었습니다. 단지도 바람이 좋았는지 코를 한껏 들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눈이 점점 침침해지던 무렵이었는데도, 그날은 바다 쪽을 오래 바라보더라고요. 저는 그 작은 뒷모습을 사진으로 한 장 남겼습니다.

이곳에선 승마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아빠와 제가 번갈아 말을 타봤는데, 말 가까이에는 강아지를 데려갈 수 없어 단지는 엄마 곁에서 기다렸습니다. 반려견과 함께라면 승마 구역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비용과 운영 여부는 현장 사정에 따라 다르니 미리 확인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늘이 워낙 없다 보니 더위를 피할 데가 마땅찮았습니다. 그러다 돌무더기가 쌓인 곳을 발견했는데, 그늘이 어찌나 작던지 엄마랑 단지만 쏙 들어가더라고요. 아빠와 저는 그 옆에 뻘쭘하게 서서 땀만 흘렸습니다. "뭔데? 둘이 시원하나?" 저도 모르게 한마디 했더니, 엄마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단지만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얄밉다가도 그 둘이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결국 저도 웃고 말았습니다. 단지는 엄마 품을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안아주면 그렇게 얌전해지던 아이라, 그 작은 그늘 안이 단지한테는 세상 제일 편한 자리였을 겁니다. 한낮 땡볕 아래, 딱 한 뼘짜리 그늘을 엄마랑 같이 있던 그 모습이 저는 두고두고 좋았습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그날의 더위까지 같이 떠오릅니다.

방문 전 확인 권장 — 등대 전망대까지는 별도 입장료 없이 산책로로 이어집니다. 한여름에는 양산·모자·물을 꼭 챙기시고, 그늘이 거의 없으니 한낮은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반려견 음수와 작은 그늘막을 미리 준비해 가시면 한결 편하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날을 정리해 보니, 섭지코지는 제가 좋아하는 여행지의 조건을 거의 다 갖춘 곳이었습니다. 가족이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즐기고, 강아지도 함께할 수 있고, 전망대에 서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딱 하나, 그늘만 있었다면 흠잡을 데가 없었을 겁니다. 양산을 들고도 쩔쩔맸던 그 더위가 아직도 생생하니까요. 그래도 단지가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던 모습, 엄마 옆 작은 그늘에 쏙 들어가 앉아 있던 모습은 더위와 상관없이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그늘만 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싶은 마음으로 접었습니다. 혹시 강아지와 함께 섭지코지를 찾으실 분이 계시다면, 양산과 물은 꼭 챙기시고 말 방목 구역에서는 목줄을 단단히 쥐시길 바랍니다. 그 두 가지만 지키면, 단지와 저처럼 오래 기억에 남을 하루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