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려견 동반 여행기

한바탕 소동 끝에 만난 바다 (외돌개, 선녀탕)

by 반려견과여행 2026. 6. 6.

제주 여행 중 어느 날, 저희 가족은 서귀포의 외돌개로 향했습니다. 전날 동쪽의 섭지코지를 둘러본 터라, 이번에는 서귀포 바다를 천천히 눈에 담아 보고 싶었거든요. 한여름의 햇살은 아침부터 제법 따가웠고, 차 문을 여는 순간부터 공기가 후덥지근했습니다. 그래도 단지와 함께 바닷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더위쯤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작은 몸으로 더위를 잘 견뎌 줄까 싶어 물과 휴대용 선풍기를 단단히 챙겼고, 단지는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코를 킁킁대며 새로운 냄새를 맡기에 바빴습니다. 사실 그날의 외돌개는 풍경 못지않게 한바탕 소동으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요. 엄마가 휴대폰을 두고 온 작은 사건 하나가 저를 예상치 못한 곳까지 데려갔거든요. 그 이야기를 풀기 전에, 먼저 그늘이 반가웠던 외돌개 산책길부터 천천히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늘이 반가웠던 외돌개 산책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외돌개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걷기에 편안했습니다. 입구에서 외돌개까지는 이백오십 미터 남짓이었는데, 다행히 길 위로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 주어 한여름의 따가운 볕을 한결 누그러뜨려 주었거든요. 야자수와 푸른 잎들이 우거진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걷고 있으니, 더운 날씨에도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단지가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고, 그늘진 자리를 골라 가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단지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제 보폭에 맞추어 느긋하게 따라왔고, 이따금 멈춰 서서 풀숲의 냄새를 맡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거니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산책로 중간중간 바다 쪽으로 시야가 열리는 곳에서는, 아래로 하얀 몽돌이 깔린 자갈 해변과 그 위로 부서지는 맑은 물결이 내려다보였습니다. 짙푸른 바다와 새하얀 자갈이 어우러진 풍경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다풍경

 

길 끝에 다다르자 시야가 탁 트이면서 외돌개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스무 미터 높이의 돌기둥은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이고 남은 바위라고 하는데, 꼭대기에 작은 소나무 몇 그루가 얹혀 있어 더욱 신비롭게 보였습니다. 그 너머로는 문섬이 어렴풋이 떠 있었고요. 전망 데크에 서니 바다 쪽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그늘 아래를 걸으며 흘린 땀을 식혀 주었습니다. 그 시원한 바닷바람이 어찌나 반갑던지,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외돌개 풍경

 

정작 단지는 이 멋진 풍경에 별 감흥이 없는 듯, 데크 바닥에 앉아 바람에 귀를 팔랑이며 저를 올려다보기만 했는데요. 그 무심한 표정마저 사랑스러워 저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외돌개는 서귀포시 서홍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따로 없습니다. 주차장은 무료 주차장과 사유지 유료 주차장이 나뉘어 있는데, 유료의 경우 이천 원가량의 요금이 들었습니다. 산책로는 제주 올레 칠 코스에 속해 있어 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화장실은 주차장 쪽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반려견과 함께라면 목줄을 꼭 챙기시고, 데크와 산책로에서는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살펴 주시면 좋습니다. 천천히 둘러보는 데에는 삼사십 분 정도면 충분하고, 그늘이 많다고 해도 한여름 한낮은 더우니 이른 시간이나 해 질 무렵을 권합니다. 운영과 관련한 세부 사항은 방문 전 확인을 권장드립니다.

 

더운 단지

엄마의 휴대폰이 데려간 황우지 선녀탕

 

외돌개를 다 둘러본 뒤, 사실 저는 근처의 황우지 선녀탕도 가 볼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외돌개에서 도보로 오 분이면 닿는 가까운 곳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입구 쪽을 살펴보니 단지와 함께 가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선녀탕으로 내려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했고, 물놀이와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벼서 작은 단지에게는 위험해 보였거든요. 무엇보다 내려가는 건 그렇다 쳐도 다시 올라올 일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날은 그냥 멀리서 보고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주차장 근처에는 마땅히 앉아 쉴 곳이 없어, 저희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잠시 걸터앉아 더위를 식혔습니다. 그러고는 차에 올라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는데요. 십 분쯤 달렸을 무렵, 엄마가 휴대폰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셨습니다. 아무래도 정류장 의자에 두고 온 모양이었습니다. 곧장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뜻밖에도 낯선 분이 전화를 받아 그 자리로 오면 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부랴부랴 차를 돌려 정류장으로 달려갔지만, 정작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전화를 해 보니, 한참을 기다리다 선녀탕으로 내려가셨다는 거예요. 결국 휴대폰을 찾으려면 제가 그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단지를 생각해 포기했던 그 길을, 휴대폰 때문에 결국 내려가게 된 셈이었지요. 팔십 개가 넘는다는 가파른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가는 길은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막상 내려가 마주한 선녀탕은 그 고생이 무색할 만큼 아름다웠는데요. 바위가 둥글게 바다를 품은 안쪽으로 맑고 푸른 물이 고여 있었고, 사람들이 그 안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그림처럼 어우러졌습니다. 무사히 휴대폰을 건네받고 다시 계단을 오르는 길에는, 정말이지 땀을 비 오듯 흘렸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겨우 위로 올라왔을 때에야, 이곳이 참 좋은 곳이지만 웬만한 각오 없이는 쉽지 않은 곳이구나 하고 실감했습니다. 황우지 선녀탕은 제주 올레 칠 코스 길에 있으며, 한때 물놀이와 스노클링 명소로 이름났던 곳입니다. 다만 지금은 낙석과 토사 유실로 인한 안전 문제로 전망대와 선녀탕 일대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으니, 방문 전 출입 가능 여부를 꼭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계단이 가파르고 바위가 미끄러워 반려견과 함께 내려가시기에는 권하기 어렵고, 보호자 한 분이 위에서 함께 기다려 주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선녀탕

 

돌이켜 보면 그날의 외돌개는 풍경보다도 그 한바탕 소동이 더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그늘진 산책로를 단지와 천천히 걸으며 맞은 선선한 바닷바람도, 휴대폰 하나 때문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땀범벅이 되었던 순간도 모두 그날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조각들이었습니다. 덕분에 본래 가 보려다 포기했던 선녀탕까지 뜻하지 않게 두 눈에 담을 수 있었으니, 어쩌면 그 작은 사건이 저에게 선물 같은 풍경 하나를 더 안겨 준 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심한 표정으로 데크에 앉아 바람에 귀를 팔랑이던 단지의 모습은 지금 떠올려도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여행이란 결국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순간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인가 봅니다. 혹시 외돌개를 찾으신다면, 가까운 선녀탕은 무리해서 내려가기보다 전망 좋은 자리에서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씀을 살짝 보태고 싶습니다.

반응형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반려견과 국내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