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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고, 눈을 채우고 (은해사, 꽃양귀비밭)

by 반려견과여행 2026. 5. 3.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절 생각이 납니다. 어릴 적엔 천주교를 믿었지만 절에도 자주 놀러 갔거든요. 사실 저는 종교를 하나로 딱 정해놓고 믿는 편이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에 마음을 열어두는 편이에요. 우리나라 관광지 중에 절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많기도 하고, 절에 들어서면 그 특유의 고요함이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혀 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부모님도 그래서인지 가족여행을 갈 때면 자연스럽게 절을 찾으시곤 했어요. 어릴 적부터 그렇게 자라서인지 저에게 절은 종교적인 공간이라기보다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쉼터에 가까워요. 이번에도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져서 가족과 반려견을 데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처음 향한 곳은 은해사였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꽃양귀비밭에서 한참을 머물렀어요. 마음을 비우러 갔다가 눈까지 채워서 돌아온 하루였습니다.

은빛 물결처럼 펼쳐진, 은해사의 연등 풍경

은해사는 말로만 들었을 때는 은혜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은해사더라고요.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름의 뜻을 알고 나니 절을 둘러보는 마음가짐도 조금 달라지더라고요. 도착하자마자 저도 모르게 큰 사찰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정도로 웅장한 풍경이 펼쳐졌어요. 기와집들이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는데, 한 채 한 채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요. 극락보전, 보화루, 설선당, 단서각, 산신각, 심검당, 종각, 우향각, 지장전, 호연당, 도선당, 청풍당, 성보박물관, 불이문, 조사 전까지 건물이 정말 많았어요. 마당에는 오 층 석탑이 있는데 어찌나 눈에 띄던지 그 주위를 천천히 돌다 보니 마음이 절로 경건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탑돌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은 순간이었어요.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는 시기라 곳곳에 연등이 달려 있었는데 이게 또 건물들과 어우러져서 한 폭의 그림이더라고요. 색색의 연등이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연등 하나하나에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겠구나 싶어서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어요.

은해사 오층석탑

 

은해사는 반려견 동반에 대한 별다른 제재가 없었어요. 절에서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고 알고 있어서 그런지 특별히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아니라면 대체로 방문을 허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모든 건물 안으로는 반려견과 함께 들어갈 수 없어서 외부에서만 둘러봤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한 곳을 들러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성보박물관입니다. 말 그대로 박물관인데 여러 자료와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어서 정말 유익했어요. 반려견은 부모님께 맡기고 저만 들어가서 사진도 보고 전시물도 살펴보고 설명 글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역사 공부도 할 수 있었거든요. 사실 저는 절에 가도 그냥 풍경만 보고 오는 편이었는데, 이런 자료들을 보니 그동안 제가 너무 겉만 보고 다녔구나 싶어 조금 부끄럽기도 했어요. 마침 그날 우리 반려견이 조금 아팠던 터라, 저는 박물관을 나와 석탑 앞에 서서 반려견과 부모님의 건강을 가만히 빌었습니다. 평소엔 무언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가족이 아프거나 반려견이 시들시들할 때면 자연스럽게 두 손이 모아지더라고요. 주차는 지정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입구 쪽에는 여느 절처럼 팔찌나 부적 같은 것들도 팔고 있었어요. 간식거리도 있어서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었는데 그게 또 어찌나 꿀맛이 던지요. 방문 전에 행사 일정이나 출입 가능 구역은 한번 확인하고 가시면 더 좋을 거예요.

우연히 만난 꽃밭, 영남대 꽃양귀비밭의 붉은 물결

은해사를 나오는 길에 아버지가 다른 곳도 가볼지 물으셔서 차에 올랐는데, 한참 가던 중에 저 멀리 빨간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처음엔 차창 너머로 빨간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는데, 다시 보니 그게 끝이 안 보일 정도로 펼쳐져 있더라고요. 저긴 꼭 들러야겠다 싶어서 차를 잠깐 세우고 구경을 갔습니다. 위치를 찾아보니 영남대학교 천지문에서 삼천지호수 일대라고 나오는데, 사실 위치 찾는 건 정말 쉬워요. 영남대학교 천지문 쪽을 보다 보면 멀리서도 빨간색이 눈에 확 들어오거든요. 처음엔 양귀비라는 말에 이게 안 좋은 거 아니냐고 했더니,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 양귀비와는 다른 꽃양귀비라고 하더라고요. 이름은 같아도 전혀 다른 꽃이라는 게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렇게 예쁜 꽃이 양귀비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는 게 조금 안쓰럽기도 했어요. 가까이서 보니 얼마나 예쁘던지 꽃밭에 들어가 사진을 잔뜩 찍었어요. 엄마가 반려견을 안고 그냥 서 있기만 해도 그게 그대로 그림이 되더라고요. 평소 사진 찍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시는 엄마인데, 이날만큼은 꽃이 워낙 예뻐서인지 자연스럽게 카메라 앞에 서 계셨어요. 그 모습이 어쩐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꽃을 좋아하시거나 사진 스폿을 찾고 계신 분이라면 진짜 한 번쯤은 가보시길 추천드려요.

꽃양귀비 밭에서

 

이곳은 정식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주차는 갓길에 해야 해요. 주차 단속이 걱정되신다면 영남대학교에 유료로 주차하고 조금 걸어서 오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냥 꽃밭이라 반려견 동반은 자유롭고, 덕분에 저도 우리 반려견 사진을 마음껏 담을 수 있었어요. 풀밭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는 우리 강아지를 보고 있자니 아까 절에서 빌었던 마음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이렇게 건강하게 잘 뛰어놀아 주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생각이요. 다만 주위에 편의점이 따로 없으니 더운 날씨에 가신다면 음료나 물, 양산 같은 건 미리 챙겨 가시는 게 좋아요. 그늘이 거의 없어서 한낮에는 꽤 덥거든요. 저희도 미리 준비를 못 해서 결국 갈증을 참으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어요. 꽃양귀비 개화 시기는 보통 5월에서 6월 사이라 시기가 잘 맞아야 이 풍경을 볼 수 있으니, 방문 전에 한번 확인해 보시면 헛걸음하지 않으실 거예요.

 

 

은해사에서 마음을 차분히 비우고 나왔는데, 돌아오는 길에 만난 꽃양귀비밭에서는 눈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어요. 계획에 없던 풍경을 우연히 만나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하는데, 이날이 딱 그런 날이었습니다. 절의 고요한 풍경과 꽃밭의 화사한 풍경이 하루 안에 다 담기니 마음이 참 풍성해지더라고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든 반려견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오늘 하루가 이 작은 생명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려견과 함께라면 두 곳 다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으니, 부처님 오신 날 즈음 가족과 함께 천천히 둘러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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