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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에도 시간이 머무는 청도읍성 (성곽길, 공북루, 석빙고)

by 반려견과여행 2026. 5. 5.

경산으로 이사 온 뒤로 청도라는 동네를 정말 자주 찾게 됐습니다. 가까워서 부담이 없고, 의외로 가볼 만한 곳이 구석구석 숨어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반려견과 함께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점이 저에게는 가장 큰 매력이었거든요. 그중에서도 청도읍성은 갈 때마다 다른 결로 다가오는 곳이라, 이번에도 우리 강아지를 데리고 천천히 한 바퀴 돌고 왔습니다.

돌로 쌓아 올린 시간, 성곽길 산책

청도읍성은 청도군 한가운데에 자리한 석축성입니다.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지형을 따라 돌로 쌓아 올린 성인데,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은 부분이 훼손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다행히 2008년부터 차근차근 복원이 진행되고 있어서, 지금은 절반 정도 옛 모습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도착하면 주차장이 잘 마련돼 있어 차를 대기 편했습니다. 입장료가 없고 반려견 출입에도 제한이 없어서, 목줄만 잘 챙기면 마음 편히 둘러볼 수 있는 곳이거든요. 관광안내소에서 안내책자를 한 부 받아 들고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길게 이어진 성곽이었습니다. 그 많은 돌을 어떻게 이렇게 정성스레 다듬어 쌓아 올렸을까, 걷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옛날부터 이곳에는 '읍성밟기'라는 풍속이 전해지는데, 성곽 위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돌면 건강해지고, 두 바퀴 돌면 오래 살고, 세 바퀴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떠올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디뎌보니,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묵은 마음까지 비워내는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청도 읍성 성곽길

옛 자취가 머무는 자리, 공북루와 고마청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말 형상의 조형물이 나타납니다. 사진 찍기 좋은 자리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곳에 '고마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해요. 고마청은 조선 숙종 때 시행된 고마법에 따라, 지방관의 교체나 사신의 왕래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민간의 말을 빌리던 관아였다고 합니다. 원형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여러 문헌을 토대로 2013년에 복원했다고 하니, 한옥 한 채 안에도 그렇게 깊은 사연이 담겨 있더라고요.

청도읍성 말 조형물

 

조금 더 걷다 보면 청도읍성의 북문인 공북루가 나옵니다. 청도읍성은 이 공북루를 중심으로 복원이 진행되어 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누각의 자태가 가장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늘이 있어 잠깐 앉아 쉬기에도 좋았어요. 더운 날이었는데 누각 아래로 들어서니 바람이 한결 시원하게 지나가더라고요. 우리 강아지도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다가 그늘에 앉으니 금세 편안한 표정이 됐습니다.

누각 옆으로는 비석들도 줄지어 있고, 성벽 안쪽으로는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작은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연못은 규모가 크진 않지만 태극 모양으로 조성돼 있고, 작은 연꽃들이 깨끗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옛 모습을 지키려는 정성이 곳곳에서 느껴지더라고요. 반려견은 자연을 좋아하는데, 이곳은 자연이면서 동시에 옛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재현된 공간이라 우리 아이도 코를 킁킁대며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얼음 창고, 청도 석빙고

읍성 외곽 동문 자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석빙고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석빙고라고 하면 저는 산속 깊은 동굴 같은 곳에 숨어 있을 줄로만 알았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정말 어딘지 모를 서늘한 기운이 감돌더라고요. 아, 이래서 석빙고구나 싶었습니다.

청도 석빙고는 조선 숙종 39년인 1713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빙고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의 석빙고는 봉분처럼 흙으로 덮인 모습인데, 이곳은 천장 부분이 사라지고 아치형 구조물만 남아 있어서 오히려 내부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석빙고라고 해요. 겨울에 인근 하천에서 얼음을 가져와 봄과 여름까지 보관했던 곳이라니, 전기 한 줄 없이 이런 지혜를 고안해 낸 옛사람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석빙고

 

읍성 주위에는 카페와 음식점도 몇 군데 자리하고 있어서, 산책이 길어졌다면 잠시 쉬어 가기에도 좋습니다. 저는 반려견과 함께라 카페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미리 준비해 간 간식과 음료로 허기를 달랬어요. 가족들이 번갈아 다녀와도 됐겠지만, 우리 강아지는 가족이 모두 곁에 있어야 마음을 놓는 편이라 그냥 벤치에 앉아 읍성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펼쳤습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청도읍성은 매년 3월에 청도읍성 예술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맞춰 방문하면 한층 더 시끌벅적하고 다채로운 행사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일정에 여유가 있으신 분이라면 그 무렵을 노려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주차장과 화장실, 장애인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지만, 행사 일정이나 반려동물 동반 관련 안내는 방문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청도읍성을 걷고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는 한참 동안 돌담의 결과 누각의 그늘, 석빙고의 서늘한 공기가 맴돌았습니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거든요. 우리 강아지도 평소보다 한결 차분한 걸음으로 저를 따라 걸어줬는데, 사람도 동물도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 비슷하게 누그러지는구나 싶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옛 정취와 산책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고 싶으신 분이라면, 반려견과 함께 청도읍성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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