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이제 섬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며칠 동안 부지런히 바다와 오름과 폭포를 누비고 나니, 돌아가는 길만은 서두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행기 대신 배를 택했습니다. 차를 그대로 싣고 제주항에서 목포까지 바다를 건넌 뒤, 다시 목포에서 경산 집까지 차로 달려야 하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떠나는 날 아침, 제주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부모님은 며칠간의 일들을 두런두런 되짚으셨고, 단지는 뒷자리에서 익숙한 듯 자리를 잡고 누웠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바다를 건너는 그 길마저도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장면으로 천천히 남기고 싶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익숙해진 제주의 풍경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며칠간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맞으며 항구로 향했습니다.
제주항 터미널 광장에서의 마지막 산책, 그리고 면세점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해 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터미널 앞 광장을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큼직한 야자수가 줄지어 선 산책로에는 제주다운 풍경이 곳곳에 담겨 있었습니다. 검은 현무암을 둥글게 쌓아 올린 조형물과 해녀를 형상화한 동상이 광장 한가운데 우뚝 자리했고, 길가에는 익숙한 돌하르방이 무심한 표정으로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머리 위로는 이따금 비행기가 낮게 떠올라, 같은 하늘 아래 누군가는 하늘로 누군가는 바다로 섬을 떠나는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떠나는 길목에서 마주한 이 광장의 풍경이, 며칠간 정든 제주가 건네는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져 발걸음이 자꾸 느려졌습니다.

단지는 며칠 사이 제법 여행에 익숙해진 듯, 야자수 그늘 아래를 코를 박고 부지런히 살피며 걸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야자열매 냄새를 맡다가 고개를 들어 저를 한 번 돌아보고, 다시 앞서 걸어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긴 항해를 앞두고 미리 충분히 걸려 두려는 마음에 평소보다 더 오래 광장을 돌았는데,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이 제주에서 단지와 함께 흙을 밟은 마지막 산책이 되었습니다.

배를 기다리는 길에 터미널 안 면세점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제주항 여객터미널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에서 운영하는 항만 면세점이 있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출국이 아닌 국내 항로를 오가는 여객도 이용할 수 있는 점이 항공 면세점과 다른 부분이라, 화장품이며 집에서 기다리는 이들에게 건넬 간단한 선물을 몇 가지 골라 담았습니다. 다만 면세점 내부는 반려견과 함께 들어가기 어려워, 부모님이 번갈아 단지와 밖에서 기다리며 들어갔습니다.

터미널 광장과 산책로는 목줄을 한 채 자유롭게 거닐 수 있었지만, 실내 매장이나 대합실은 동반이 제한되니, 반려견과 함께라면 일행이 번갈아 자리를 지키며 나누어 움직이는 편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단지를 안고 오른 배, 그리고 노래방이 된 반려견 공간
면세점을 지나자 부두 너머로 우리가 탈 커다란 배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제주와 목포를 오가는 산타루치노호로, 가까이서 올려다보니 그 규모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차량은 차량대로 정해진 부두에서 미리 선적을 마쳤고, 우리는 사람과 짐을 따로 챙겨 배에 오를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부터가 진땀의 시작이었습니다. 배에 오르려면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야 했는데, 우리는 케이지 대신 유모차를 챙겨 온 터라 그만 난감해지고 말았습니다.

원래 반려견과 배를 타려면 단단한 케이지를 준비하는 것이 맞는데, 유모차면 충분하리라 여긴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결국 유모차를 접어 한 손에 들고, 다른 팔로는 단지를 꼭 안은 채 계단을 올랐습니다. 흔들리는 발밑과 높은 계단이 무섭기도 하고 힘에도 부쳐, 한 칸 한 칸 디딜 때마다 진땀이 흘렀습니다. 한 손엔 접은 유모차, 한 팔 엔 단지를 안고 좁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부모님도 곁에서 조마조마하게 짐을 나누어 드셨습니다. 단지도 낯선 높이가 무서웠는지 제 품을 파고들며 가만히 몸을 맡겼고, 그 작은 떨림이 팔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겨우 배에 오른 뒤에는 반려견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다고 해서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강아지 손님이 워낙 많아 임시로 마련해 둔 자리였고, 알고 보니 그곳은 배 안의 작은 노래방이었습니다. 그 큰 배 한구석의 비좁은 방에 여러 반려견과 보호자가 함께 모여 있었는데, 한쪽에서는 쉴 새 없이 짖는 소리가 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배변을 하는 통에 공기가 영 어수선했습니다. 단지는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긴 했지만, 떠나기 전 항구에서 충분히 산책을 했는데도 표정에는 긴장이 가득했습니다. 반려견과 배를 탈 계획이라면, 미리 케이지를 준비하고 반려견에게 어떤 공간이 제공되는지 선사에 직접 확인해 두는 것이 마음 편한 여정을 위한 가장 확실한 준비였습니다.
갑판 위에서 바라본 바다와 섬들, 그리고 목포 도착
비좁은 방 안의 어수선함을 견디기 어려워질 즈음, 갑판으로 나가도 된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문을 열고 바깥 갑판으로 나서자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듯했습니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단지도 코를 한껏 들어 바람 냄새를 맡았습니다. 난간 너머로는 멀어지는 제주의 능선이 한참 동안 보였고, 항로를 따라가는 사이 크고 작은 섬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갑판 위에는 크레인과 구명정 같은 큼직한 선박 설비가 놓여 있어, 그 너머로 펼쳐진 잔잔한 바다와 묘한 대비를 이루었습니다. 햇빛에 잘게 부서지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니, 다섯 시간에 가까운 긴 항해가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단지는 갑판 한쪽에 자리를 잡고 바다를 향해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비좁은 실내에서 잔뜩 굳어 있던 몸이 바람을 쐬며 조금씩 풀리는 듯했고, 이따금 부모님 무릎에 기대어 눈을 감기도 했습니다. 작은 몸으로 낯선 배 위에서 긴 시간을 버텨 준 것이 고마워, 자꾸만 등을 쓸어 주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은 조금씩 선선해졌고, 멀리 화물선 한 척이 같은 바다를 가르며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바다 위에서 보낸 오후가 천천히 흐르고, 저 멀리 목포항의 윤곽이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산타루치노호가 다니던 이 제주와 목포를 잇는 항로는 현재 퀸제누비아호와 퀸제누비아 2호가 이어받아 운항하고 있습니다. 운항 시간은 약 네다섯 시간 안팎이며, 지금의 배들은 반려동물 전용 객실을 갖추고 있어 케이지만 준비하면 한결 편하게 동반 승선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차량을 함께 싣는다면 출발 한 시간 전까지는 부두에 도착하는 것이 좋고, 자세한 시간표와 반려동물 동반 조건은 씨월드고속훼리 공식 안내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목포항에 내린 뒤에는 단지를 잠시 산책시켜 굳은 다리를 풀어 주고, 다시 차에 올라 경산까지 세 시간 반을 더 달렸습니다. 배에서 내린 단지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여, 그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분명 아침 일찍 배에 올랐는데, 집 앞에 도착하니 어느새 저녁이 깊어 있었습니다. 다들 짐을 풀 기운도 없이 그대로 곯아떨어질 만큼 고단한 하루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주의 바다와 오름과 폭포를 부지런히 누비던 날들, 그리고 그 모든 길 위에 늘 단지가 함께 있었습니다. 작은 발로 검은 바위를 딛고, 야자수 그늘을 지나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그 모습들이 이 긴 여행의 가장 선명한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제주를 찾는 날이 온다면, 그때도 이 길 위의 풍경들을 천천히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먼 길을 함께 돌아 준 단지에게, 그날의 고단함마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반려견과 함께 먼 길을 떠나 보려는 분들께, 조금은 번거로워도 그 시간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추억이 되리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반려견 동반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섶섬이 바라보이는 보목포구 (방파제 붉은 등대, 현무암 해안) (0) | 2026.06.23 |
|---|---|
| 성읍민속마을, 오백 년 도읍지 (성문과 성벽, 초가집, 돌하르방) (1) | 2026.06.22 |
| 생각하는 정원, 한 농부가 빚은 풍경 (인공폭포, 분재, 돌하르방) (1) | 2026.06.21 |
| 한림공원, 반려견과 걸은 한나절 (유리 온실, 재암민속마을, 새들의 정원) (0) | 2026.06.20 |
| 돌마다 다른 표정, 금능석물원 (초가, 인어와 동자, 천 가지 표정) (0) | 2026.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