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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실망하고 더 많이 걸었던 (엉또폭포, 제주월드컵경기장) 비가 와야 생긴다는 폭포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비가 쏟아진 뒤에야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로운 곳이라기에, 도대체 어떤 폭포일까 궁금해 찾아보니 서귀포의 엉또폭포였습니다. 마침 전날 비가 꽤 내렸던 터라, 이런 날이 아니면 또 언제 보겠나 하는 마음에 아침부터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평소에는 물길이 말라 있다가 비가 충분히 와야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니, 비 갠 흐린 하늘이 그날따라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엉또폭포 한 곳만 제대로 보고 오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가족 모두와 단지를 데리고 차에 올랐습니다. 비가 와야만 흐른다는 폭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니, 그 자체로 어딘가 특별한 여정처럼 느껴졌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설렘도 컸는데, 그 설렘이 .. 2026. 6. 9.
바람 센 날 건넌 다리 끝 귀여운 섬 (새연교, 새섬) 제주에서 보낸 어느 늦은 오후였습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말 듯했었어요. 일정이 정해진 여행이라 흐린 날씨를 핑계로 숙소에만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향한 곳이 서귀포항 끝자락에 자리한 새연교였습니다. 서귀포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아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섯 시쯤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주차 요금을 따로 받지 않아 시작부터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차에서 단지의 개모차를 내려 끌고 다리 입구로 걸어가던 그 순간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흐린 날의 바다는 맑은 날과는 또 다른 빛을 띠더라고요. 회색빛 하늘 아래 천천히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오늘은 어떤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가만히 기대해 보았습니다. 비가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는.. 2026. 6. 8.
제주 카멜리아힐 반려견 동반 후기 (돌하르방, 매표소, 식물원) 저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정보를 잘 찾아보지 않는 편입니다. 영화관에 갈 때도 예고편을 보지 않고 들어가거든요. 모르고 마주하는 첫 장면이 좋아서 그렇게 다니는데, 이게 늘 좋게만 흘러가지는 않더라고요. 막상 도착해서 문제가 생기면 대처할 방법이 없어지기도 하니까요. 제주 여행 중 카멜리아힐을 가기로 마음먹은 그날이 딱 그런 날이었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카멜리아힐은 꼭 한번 가봐야지 했던 곳이라 가족들과 단지를 데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매표소 앞에서 예상 못한 상황을 만났습니다. 그 짧은 몇 분이 그날 여행 중 가장 또렷한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카멜리아힐 매표소에서 생긴 일카멜리아힐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넓었지만 대형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고 단체 관광객도 많아 보였습니다. 주차장.. 2026. 6. 7.
한바탕 소동 끝에 만난 바다 (외돌개, 선녀탕) 제주 여행 중 어느 날, 저희 가족은 서귀포의 외돌개로 향했습니다. 전날 동쪽의 섭지코지를 둘러본 터라, 이번에는 서귀포 바다를 천천히 눈에 담아 보고 싶었거든요. 한여름의 햇살은 아침부터 제법 따가웠고, 차 문을 여는 순간부터 공기가 후덥지근했습니다. 그래도 단지와 함께 바닷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더위쯤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작은 몸으로 더위를 잘 견뎌 줄까 싶어 물과 휴대용 선풍기를 단단히 챙겼고, 단지는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코를 킁킁대며 새로운 냄새를 맡기에 바빴습니다. 사실 그날의 외돌개는 풍경 못지않게 한바탕 소동으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요. 엄마가 휴대폰을 두고 온 작은 사건 하나가 저를 예상치 못한 곳까지 데려갔거든요. 그 이야기를 풀기 전에.. 2026. 6. 6.
그늘 한 점 없던 섭지코지 언덕 (언덕길, 등대 전망대) 붉은 흙길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자 더운 바람이 훅 들어왔습니다. 8월 초, 한낮의 제주는 그늘 밖에 서 있기가 겁날 만큼 뜨거웠습니다. 그런데도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빼곡했고, 사람들 손에 들린 목줄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 말고도 강아지를 데리고 온 가족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단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코부터 들이밀며 낯선 냄새를 살폈습니다. 처음 온 곳에서는 늘 이렇게 한참을 망설이다, 괜찮다 싶으면 그제야 발을 떼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양산을 펴 들고 단지의 목줄을 짧게 고쳐 쥐었습니다. 그늘이라곤 보이지 않는 그 언덕길을, 이제 함께 걸어볼 참이었습니다. 더울 걸 뻔히 알면서도 굳이 한낮에 나선 건, 그냥 그날따라 바다가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단지를 데리고 이렇게 멀리까지 온 .. 2026. 6. 5.
우도의 바다를 통째로 담은 하루 (땅콩아이스크림, 해물탕, 비양도) 배 위에서 멀어지는 성산항을 바라보던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도의 선착장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차를 빼서 나오는 길, 가장 먼저 코끝을 스친 건 고소한 땅콩 냄새였거든요. 작은 섬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은 그날의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 단지를 품에 안고 내려선 우도의 첫 공기는 어딘가 들떠 있으면서도 한없이 평화로웠습니다. 발끝에 닿는 햇살도, 멀리 부서지는 파도 소리도 어쩐지 육지의 그것과는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짧은 하루 동안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예쁜 바다와, 물때 따라 모습을 바꾸는 비양도, 그리고 우연히 만난 따뜻한 마음들까지.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걸어도 좋을 만큼 우도는 생각보다 넉넉하고 다정한 섬이었습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그 하루를 이제부터 차근차근 풀.. 2026.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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