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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반려견 동반 여행5

섶섬이 바라보이는 보목포구 (방파제 붉은 등대, 현무암 해안) 제주 남쪽 바다를 따라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관광지 특유의 들뜬 공기와는 결이 다른 한적한 포구를 만나게 됩니다. 보목포구가 꼭 그런 곳이었습니다. 큼직한 명소들을 부지런히 돌고 난 뒤라 다리도 마음도 조금은 지친 상태였는데, 작은 어선 몇 척이 묶여 있는 이 조용한 포구에 들어서자 마음이 절로 가라앉았습니다. 멀리 바다 위에는 섶섬이 묵직하게 떠 있었고, 방파제 끝에는 붉은 등대가 작은 점처럼 보였습니다. 부모님은 차에서 내리시며 바다 냄새부터 깊게 들이마셨고, 저는 목줄을 챙겨 들었습니다. 이름난 볼거리가 줄지어 선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서두르지 않고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부두에 묶인 배들이 물결 따라 가볍게 흔들리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우리는 천천히 방파제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2026. 6. 23.
성읍민속마을, 오백 년 도읍지 (성문과 성벽, 초가집, 돌하르방) 붉은 송이가 깔린 길을 밟으며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검은 현무암을 쌓아 만든 성벽과 그 위로 날렵하게 솟은 성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민속촌과 달리 이곳은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박제된 옛 모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흐린 하늘 아래 둥근 초가지붕들이 낮게 엎드려 있었고, 돌담 사이로 난 골목은 어디로 이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단지는 낯선 흙냄새가 좋은지 코를 땅에 박고 앞장서 걸었고, 부모님은 마당 한쪽에 매달린 푸른 열매를 올려다보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비가 갠 뒤라 붉은 흙길에서는 흙냄새가 짙게 올라왔고, 그 위로 단지의 발자국이 작게 찍혔습니다. 어디서부터 둘러볼지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돌담이.. 2026. 6. 22.
생각하는 정원, 한 농부가 빚은 풍경 (인공폭포, 분재, 돌하르방) 녹차밭을 지나 검은 돌담이 둘러싼 입구에 닿자, 키 큰 돌하르방 하나가 먼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생각하는 정원이라 적힌 현판과, 같은 이름을 한자로 새긴 글씨가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반세기 가까이 돌을 깨고 가시덤불을 걷어내며 일군 정원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은 터라, 문 앞에서부터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한경면 들판을 가르는 바람은 거칠었지만 정원 안쪽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발을 들이자마자 물소리가 먼저 마중을 나왔습니다. 단지는 낯선 풀냄새가 궁금한지 코를 박고 분주히 걸음을 옮겼고, 부모님은 입구에 놓인 분재 앞에서 벌써 한참을 머물러 계셨습니다. 어디서부터 둘러봐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을 만큼 정원은 넓었고, 그저 물소리가 이끄는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2026. 6. 21.
돌마다 다른 표정, 금능석물원 (초가, 인어와 동자, 천 가지 표정) 여름 햇살이 돌 위로 곧장 내려앉던 한림이었습니다. 한림로를 따라 달리다 길가에 우뚝 선 표지석을 보고 차를 세웠습니다. 거친 현무암에 깊게 파인 '금능석물원'이라는 글자가 단단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똑같은 얼굴의 돌하르방만 줄지어 본 터라,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 깎았다는 돌 정원이 어떤 곳일지 궁금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키 큰 소나무 그늘 아래로 수백 개의 석상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관광지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오래된 마당에 들어선 듯한 고요함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단지도 유모차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낯선 돌들을 살폈습니다. 부모님은 그늘진 길을 앞서 천천히 걸으셨고, 저는 단지가 탄 유모차를 밀며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습니다. 매미 소리만 가득한 .. 2026. 6. 19.
에메랄드빛으로 물든 천제연폭포 (제1폭포, 칠선녀교) 7월의 제주는 장마 끝자락이라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아침까지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한낮이 되자 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졌고, 그 습한 더위 속에서 저희 가족은 중문으로 향했어요. 며칠 내린 비 덕분에 폭포 물이 가장 풍성할 때라는 말을 듣고, 마른날엔 물줄기조차 보기 어렵다는 천제연폭포를 일부러 그 타이밍에 맞춰 찾아갔습니다. 한라산에서 시작된 중문천이 바다로 흘러가며 만든 폭포라더니, 주차장에 내려서자마자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개모차에 단지를 태우고 매표소를 지나 돌계단을 내려가는데, 계곡 안쪽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물 내음이 그제야 더위를 한 풀 식혀주더라고요.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갈수록 물소리가 점점 또렷해졌고, 마침내 나무 그늘 사이로 거대한 절벽.. 2026.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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