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을 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침 일찍 가족과 단지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마침 영천에 작약축제 기간이라 한껏 들떠서 출발했거든요. 처음 목적지는 화남면 쪽 작약꽃밭이었는데, 도착해 보니 올해는 작약꽃이 피지 않았다는 안내문이 떡하니 붙어 있더라고요. 매년 열리던 축제가 올해는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희 가족 말고도 매년 그곳을 찾던 분들이 적지 않게 모이셨더라고요. 단지도 신나게 차에서 내렸다가 발길을 돌리려니 산책을 조르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가까운 곳에 보현산 약초식물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발길 돌려 향한 보현산 자락의 식물원
보현댐을 지나고 짚라인 타는 곳을 지나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어졌습니다. 창밖으로는 푸른 산자락과 맑은 댐의 물빛이 번갈아 보이며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거의 산꼭대기에 가까워질 즈음에야 약초식물원 주차장이 나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름이 약초식물원이라 뿌리만 가득한 곳일까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요. 저희가 아는 약초라고는 도라지나 인삼처럼 뿌리로 된 약재들뿐이라 어떤 곳일지 도무지 그려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 안에서 가족들과 약초식물원이 도대체 어떤 곳일까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보니 의외로 차가 꽤 들어차 있어서 살짝 놀랐습니다. 매년 작약축제를 찾던 분들이 저희처럼 발길을 돌려 이곳으로 오신 듯했고, 가족 단위 방문객도 많았으며 어르신들도 곳곳에 보였습니다. 단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코를 킁킁대며 신난 발걸음으로 앞장섰는데, 산속 공기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입구에서 안내 팻말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는데 잘 다듬어진 정원이라기보다는 산의 결을 그대로 살려놓은 듯한 분위기라 마치 산책로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키 큰 나무들이 햇볕을 가려주어 한낮인데도 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워 있었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발걸음을 천천히 만들었습니다. 실외 식물원이라 반려견은 제재 없이 함께 입장할 수 있었고, 주차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부담이 없었습니다. 위치는 영천시 화북면 보현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차량 이동이 필수이고, 굽이굽이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니 멀미가 있는 분이나 반려견은 미리 대비하시면 한결 편하게 도착하실 수 있습니다. 운영 시간과 휴무 여부는 계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방문 전 확인을 권장드립니다.

살아 있는 약초들로 가득 채워진 풍경
작약꽃밭이라는 화살표를 따라 걷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 위에 들어선 뒤로는 발걸음이 자꾸 늦춰지더라고요. 양옆으로 펼쳐진 풀과 나무들이 그냥 풀이 아니라 하나하나 이름이 적힌 약초들이었거든요. 살아 있는 채로 이렇게 다양한 약초를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평소에 이름만 들었던 약재들이 잎과 줄기를 달고 자라난 모습을 보니 신기해서 자꾸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식물들도 푯말을 보면 모두 다른 약초였고, 이거다 싶었던 것도 옆에 있는 것이 진짜인 경우가 있어 가족들과 웃으며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식물마다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는 점이 특히 좋았는데, 모르는 것을 그 자리에서 배워가는 재미가 컸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라면 자연스럽게 식물 공부가 될 듯해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단지도 풀숲 사이를 코로 킁킁대며 즐겁게 둘러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 길 끝에 작약꽃밭이 펼쳐졌는데, 정말 너무 예쁘더라고요. 단정하게 줄을 맞춰 심긴 작약들이 빨간색 꽃과 흰색과 핑크가 섞여 있는 꽃이 피어 있어서 발걸음이 한참 멈췄습니다. 색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어느 쪽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고, 꽃송이가 어찌나 큼직한지 한 송이 한 송이가 손바닥만 했습니다. 이게 너무 이뻐서 나중에 마당 있는 집을 살게 된다면 꼭 작약꽃을 심어야겠다고 다짐했을 정도입니다. 가족들이 이곳을 가꾸는 데 정성을 많이 쏟으셨겠다며 연신 감탄하셨습니다. 잡초 하나 없이 깔끔하게 관리된 모습에서 손길이 얼마나 자주 닿는 곳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화남면 작약꽃밭에서 못 본 아쉬움이 이곳에서 모두 풀린 기분이었습니다. 식물 보호를 위해 정해진 길 위에서만 이동하시기를 권해 드리고, 식수대나 그늘이 충분치 않을 수 있으니 마실 물은 따로 챙겨가시는 편이 좋습니다.

팔각정에서 내려다본 푸른 산세
작약꽃밭을 한참 둘러본 뒤에 시선을 들어 보니 저 위쪽 능선에 정자 하나가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 길이 또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날이 더운 데다 오르막이 계속 이어져서 단지도 혀를 쭈욱 빼고 헉헉거리며 따라왔습니다. 중간중간 마련된 벤치 그늘에 앉아 단지에게 물을 먹이며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가족들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부채질을 하며 서로 힘을 북돋아주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오르고 나서야 정자에 닿았는데 팔각정 모양에 2층 구조였습니다. 2층에 올라서니 산 아래 풍경이 사방으로 펼쳐졌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그동안의 피로가 한 번에 가셨습니다. 풍경 또한 장관이었습니다. 멀리 마을 풍경과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이어진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정자 마룻바닥에 잠시 앉아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가는 시간이 참 좋았고, 단지도 시원한 그늘에서 한참을 엎드려 있었습니다. 내려올 때는 올라온 방향과 반대편 길을 택했는데, 그 길에도 또 다른 식물들이 줄지어 있어 발걸음이 자꾸 멈췄습니다. 같은 식물원 안인데도 길마다 풍경이 달라한 바퀴를 돌고 나니 다른 곳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입구로 돌아왔을 때 시계를 보니 거의 세 시간이 흘러 있었습니다. 봄뿐 아니라 여름과 가을에 와도 풍경이 또 다를 듯해서 다른 계절이 벌써 기대되었습니다. 다만 정자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과 흙길, 계단이 섞여 있어 개모차로는 다니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반려견과 동행하신다면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충분한 물과 그늘에서 쉴 시간을 미리 계획하시기를 권해 드리고, 미끄럽지 않은 신발로 다녀오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양산과 물은 꼭 챙기시길 권장합니다.

발길이 어쩌다 닿은 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된다는 말을 다시금 실감한 하루였습니다. 작약축제가 열리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그 덕분에 만난 보현산 약초식물원이 오히려 더 깊은 인상으로 남았거든요. 살아 있는 약초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걷는 시간이 참 귀했고, 정자 위에서 마주한 산세는 한참을 잊지 못할 듯합니다. 단지도 산속 공기와 흙냄새 사이를 즐겁게 누비며 오랜만에 시원한 산책을 만끽한 듯했습니다. 봄날의 햇살 아래 가족과 반려견과 함께 걷고 싶은 산속 정원을 찾고 계시다면, 보현산 약초식물원을 한 번 다녀와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